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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석탄산업의 몰락, ‘막장’까지 온 사연은

한국 석탄산업의 몰락, ‘막장’까지 온 사연은?

한국 석탄산업의 몰락, ‘막장’까지 온 사연은?

2025년 6월, 대한민국 마지막 공영탄광이 문을 닫습니다. 강원도 삼척의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며, 국·공영 탄광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제 석탄 산업은 민영 1곳만이 명맥을 이어갈 뿐입니다. ‘막장’이란 단어의 어원이 탄광의 끝을 의미했다는 사실처럼, 한국 석탄산업 역시 역사적 ‘막장’에 도달한 것입니다.

💥 왜 석탄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을까?

연탄과 무연탄, 한때 국민 생활의 중심이었다

1960년대~80년대, 연탄은 겨울철 난방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무연탄 생산은 1988년 사상 최대치인 2,429만 톤까지 이르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가정용 에너지원이 LNG로 전환되며 수요 급감

정부는 1981년부터 LNG 전환 정책을 시행하며 도시가스 보급에 집중했고, 1985년부터는 서울시 신규 주택에서 연탄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후 석탄 수요는 가파르게 감소했습니다.

▶ 1988년: 석탄 생산 정점
▶ 1992년: 수요, 고점의 1/3 수준으로 급감
▶ 2024~2025년: 장성·도계광업소 연속 폐광

📉 '막장'까지 온 석탄 산업의 역사, 어떻게 흘러왔나?

1. 해방 이후 – 석탄 부족, 장작 의존

북한에 많은 탄광이 위치했던 탓에, 남한은 연료 자립이 어려운 상태로 출발했습니다. 6·25 전쟁으로 산림이 황폐화되며 석탄 개발 필요성이 급증했습니다.

2. 1960~70년대 – 석탄의 전성기와 연탄 보급

제1차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석탄개발임시조치법이 시행되어 대규모 탄광 개발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 시기 탄광 수는 300곳을 넘었고, 연탄은 전국민의 주연료가 되었습니다.

3. 석유 파동으로 잠시 반등

1·2차 오일쇼크 시기인 1970~80년대 초, 석탄은 일시적으로 부활했지만, 이는 단기 반짝 효과에 그쳤습니다.

⚙️ 구조조정과 폐광 – 석탄산업의 현실적인 종착점

생산비 증가와 영세성, 구조적 한계에 봉착

탄맥이 깊어질수록 채굴 비용은 증가했고, 전체 탄광 중 87%가 연 10만 톤 미만 생산인 영세 광업소였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는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 1988년: 347곳 → 1992년: 115곳
● 1995년: ‘장기가행탄광’ 11곳만 유지
● 2020년: 1988년 대비 생산량 96% 감소

폐광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

탄광은 단순한 에너지 생산지가 아닌 지역 경제의 생명선이었습니다. 구조조정은 실업과 인구 유출, 지역 붕괴로 이어졌고, 1995년 고한·사북의 항의 시위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강원랜드와 ‘폐광특별법’이 남긴 것들

대체 산업의 모범 사례, 강원랜드

폐광 지역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은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 설립으로 이어졌고, 현재도 지역 경제의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진한 지원과 갈등

삼척 도계광업소의 조기 폐광 결정 이후, 정부 차원의 대체 산업 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습니다. 2025년 6월 시민 총궐기 대회는 이 같은 구조적 갈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 결론: 석탄의 역사에서 에너지 전환의 미래를 보다

87년 전 시작된 석탄 산업은 산업화와 근대화, 도시화의 견인차였으나, 시대의 변화 속에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막장’이라는 단어의 유래처럼, 끝에 도달한 현재,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 속에서 지역의 생존,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 "에너지원은 바뀌지만, 사람의 삶은 계속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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